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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희 배우, 부조리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삶을 택한 시지프스

원본 출처: [인터뷰] 이상희 배우, 부조리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삶을 택한 시지프스 

("련희와 연희" 공식사이트 https://ryunhee.com/2017/11/30/interview-leesanghee/ )



인상적인 연기 잘 봤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연기를 한 것 같다.
다 보고서 눈물이 좀 났다.

 

좋은 시나리오 덕분일 겁니다. 연극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접해봤는데, 연기가 좋아서 작품이 빛나는 경우보다 오히려 좋은 작품이 인물을 살려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캐스팅해주신 최종구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정이 격한 부분뿐만 아니라 일상 씬에서도 눈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련희와 연희> 연기를 하면서 메소드 연기(?) 를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

 

영화가 처음이라 거울 보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제 모습이 화면에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련희의 가슴 속에 단단히 굳어버린 아픔의 무게를 온 몸에 품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식사량, 말 수, 웃음 등을 많이 줄였습니다. 무겁고 규칙적인 호흡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요. 제일 신경 쓰인 건 걸음걸이였습니다. 평소 너무 자유분방한 팔자걸음이 련희의 캐릭터와 맞질 않아서요. 습관이라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혼자 괄약근 조여가며 고군분투했지요.

 
 

련희는 끈 떨어진 갓(?)처럼 그렇게 남한에 정착하는데,편의점 소녀 연희를 처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련희 관점에서 보자면 연희를 받아들인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까?

 

좀 지나친 해석일수도 있지만, 저는 련희와 연희에게서 신에 대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련희 딸의 죽음도, 연희가 그런 부모를 만난 것도 모두 신의 영역이니까요. 련희의 차가움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잊지 않고 절대 적응하지 않음으로써 신에게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련희는 영겁의 형벌을 감내함으로써 끝끝내 신에게 저항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삶을 선택한 것이지요.

연희의 방탕한 삶도 같은 의미에서 저항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여인은 느낌으로 서로를 읽어낸 것 같습니다. 연희가 아이를 낳기로 결정함으로써, 련희가 연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두 여인은 거대한 신의 부조리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극 초반에 련희는 타자로서 배척받는 (?) 부분보다 오히려 자신이 더 사회를 배척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그동안 타자로서 존재했던 여성 혹은 또 탈북자에 대한 은유일까? 이상희씨의 생각은 어떤가?

 

련희를 탈북자, 이방인 또는 여성으로 규정지어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픔이 너무 커서 존재가 아픔 속에 묻힌 한 인간으로 련희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련희가 사회를 배척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기보다, 아픔이라는 고치 속에 갇혀 고치 밖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던 거라고 느꼈습니다.

련희의 가시 도친 고치는 얼핏 보면 사회와 타인에 대한 적의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련희는 그 가시가 살로 파고드는 고통을 외롭게 감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련희에게 있어서 연희는 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굉장히 애매한 존재다. 여성연대라고 표현하기에도 모호하고, 모성애라고 하기에도 그런데, 련희가 연희에게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련희는 연희에게서 강한 저항의식을 느낀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영겁의 형벌을 내림으로써 신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련희의 눈에 비친 연희의 모습은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이었습니다.

가난을 증오로 표현하지 않고, 탈 도덕을 부끄러움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 좋은 엄마가 됨으로써 거지같은 엄마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겠다는 결투장을 던진 아이. 련희와 연희는 서로에게 정신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저항동지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대안 가족 이야기도 나왔던데, 련희에게 있어서 연희는 새로운 가족인가?

 

그럼요. 가족이지요. 그것도 매우 진보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보통 피가 섞여야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핏줄, 내 가족만 바라보고 삽니다. 내 핏줄을 잃었을 때의 충격과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련희는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했기에, 핏줄과 관습을 뛰어 넘어, 진정 진보적인 가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사회적 연대의 시작이 아닐까요. 내 핏줄에게 향하던 시선을 들어 주변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한 걸음이 아닐까요.

 
 

이상희씨가 나오는 연극 <세자매> 공연도 잘 봤다.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불꽃같다고 할까? 연극에서의 그런 열정들이 영화에서는 어땠는가? 가령 호흡이라든지.

 

<련희와 연희> 첫 리허설 때 스태프 분들이 많이 당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호흡이 너무 연극적이어서 다들 많이 우려 하셨다고요. 사실 많이 긴장했었습니다.

영화로는 첫 작업이거든요. 하지만 차츰 적응해나가면서, 영화나 연극이나 호흡을 쓰는 건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에 맞게 표현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것 외에 연기의 본질은 같은 것 같습니다. 배우로써 가장 즐거운 시간은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생성하고 잇고 증폭시키는 과정입니다. 에너지는 호흡을 통해 만들어지니 호흡이 곧 에너지고 열정이지요.

그런데 영화는 촬영이 용이한 순서대로 찍으니까 매 장면마다 호흡을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연결되는 장면을 며칠 뒤에 찍는 경우도 있어서, 이전 촬영 때의 호흡과 에너지를 그대로 소환하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더군요.

 
 

향후 계획과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배우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2017년 12월22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스프레이> 라는 작품을 올립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2017 올해의 레퍼토리에 선정된 작품이고 전회 출연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연극이라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운 좋게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기꺼이 열정을 불사를 준비 되어 있습니다. 관객님들!!! 감독님들!!! 작가님들!!! 공연 보러오세요~~~

 
 

글_audrey park 무비스크램블 에디터 (audrey@moviescramb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