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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마더', 마더에게 세상은

보통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엄마가 언급될 때는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서 보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타자였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헌신적인 엄마가 있었고 그에게는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운 엄마가 있었다 혹은 옆집 엄마는 어떠어떠하더라 등이다.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라고 불려지며 한계 지어지는 그들에게는 익숙한 이미지가 있다. 오늘 읽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그 엄마의 익숙한 모습과 낯선 모습이 모두 드러난다. 그뿐이 아니다 [마더]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나리오를 펼친다.


 1. 그냥 마더

 영화를 보면 왜 봉준호 감독이 주인공으로 김혜자를 고집했는지 알 수 있다. 김혜자에게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마더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울엄마 혹은 옆집엄마가 가지고 있을 법한 자식에 대한 사랑,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는 소녀스러움, 세월의 흔적, 신경질, 짜증, 웃음, 울음, 분노, 뻔뻔함, 극성스러움... 때로는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부끄러운 그런 우리의 진짜 엄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몇 십년 동안 연기해온 전원일기 속의 어머니 그 자체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녀는 익숙한 마더의 이미지를 먹고 들어간다. 뭐 그다음부터야 영화에서 스토리전개상 낯선 마더의 이미지가 나오기는 한다.

 

# 1 어딘가

 

넓게 펼쳐진 들판, 바람에 출렁이는 풀들 너머로 멀리 숲이 보인다.

숲에서부터 걸어나온 듯한 혜자, 어느새 카메라 앞까지 다가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 뭔가 넋이 나간 듯한 얼굴 ...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커다란 눈동자 ...

혜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문득, 고요한 바람소리 너머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혜자.

넋나간 표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 몸을 흔든다.

 

넓은 들판, 홀로 외롭게 아줌마 춤을 추는 혜자의 모습 위로,

메인 타이틀 < 마더 > 떠오른다.

 

몇분사이에 관객들은 어... 어라 저 엄마가 왜 저런대니? 미쳤나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대니? 하는 감정을 가지며 극에 서서히 빠져든다. 물론 마더는 평범하지 않다. 적어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사연이 있으며 나름 특별한 데도 있다.

 

# 8 경찰서

 

(...중략...)

빽미러는 철순이 깼다는 걸 진정으로기억 못하는 듯, - 한 물고기 눈빛이 되는 경배, 문득 두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이상하게 누르기 시작하고 ...

 

철순 : 가뜩이나 벤츤데 어쩔래 ... 좀 비싸 그게 ?

경배 : ... 많이 비싼가 ...?

제문 : 최하 ... 이백은 할 걸 ...

 

그죠 ? 라는 눈빛으로 중년의 교수를 바라보는 제문, 고개 끄덕이는 교수.

 

경배 : - ! 내가 왜 그랬지 ? -

 

한심한 듯 바라보는 형사들 너머로 ... 사무실 문 열리며 들어오는 혜자가 보인다.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가며, 익숙하게 경찰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혜자,

마치 보험 아줌마처럼 ... 쌍감탕을 또각또각 한 병씩 책상마다 놓으면서 돌진해온다.

경배, 그런 엄마가 챙피하기라도 한 듯, 다시 고래를 숙이며 골프공에 낙서를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구차해질 수 있는 또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 마더의 모습 위에 모자란 자식이 안타까워서 좀 유별나진 그런 모습이 덧씌워진다.

 

# 10 버스 정거장 / 저녁

 

(...중략...)

경배가 담벼락에 대고 오줌을 누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혜자) : 경배야 ... !

 

화면 오른쪽에서, 흰 대접을 들고 프레임 - 인 하는 혜자.

오줌누는 경배를 누가 볼까 두려운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혜자 : 너 약! 오늘치 약 먹어야지 ...

 

계속 오줌이 나오는지, 경배의 두 손은 앞 지퍼 족에 붙들려있고,

조급한 혜자는 손에 쥔 흰 약사발을 경배의 입에 들이 민다.

벽을 향해 오줌을 누면서, 동시에 시커먼 한약을 꿀꺽꿀꺽 삼키는 경배 ...

약사발을 기울이며 지긋이 경배를 바라보는 혜자 ... 기묘한 풍경이다.

 

(...중략...)

 

 

2. 그런 마더에게 세상은

 

그런 마더가 느끼는 세상은 한마디로 낯설고 험하고 마더에게 무관심하다. 착착 입에 떨어지는 시나리오와 달리 지루하고 외국영화처럼 낯선 영화의 생경한 느낌 그자체다.

 

 

# 17 폐가 / 이른 아침

 

디졸브 계속되면 ... 이른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폐가의 돌출된 옥상 위.

검은 긴 머리를 밖으로 늘어뜨리고, 난간아래로 축 - 늘어져있는 여고생의 시체.

그런 시체를 우두커니 올려다 보고 있는 형사들 ... 제문, 홍조, 그리고 반장의 모습

 

홍조 : 이름이 정. . 숙 이구요. 서린종고 2학년 4...

반장 : 집에는 연락됐어 ? 보호자는?

홍조 : 할머니만 한 분 있는데 치매라서 ... 보호를 받는입장이라네요.

제문 :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 살인사건이 ...

홍조 : (웃으며) 저 오구나선 처음 같은데.

반장 : 허허 ... 그렇게나 없었나?

 

뭔가 화기애애 하면서도 조금씩은 어색한 ... 기묘한 현장 분위기

마치 금강산 봉우리 쳐다보는 관광개들처럼, 시체를 계속 올려다보는 형사들.

 

장면 바뀌면 ... 폐가 옥상 위에 올라가 시체 바로 옆에 서있는 제문과 홍조

사건현장을 둘러싼 폴리스 라인과 주변 통제중인 인원들의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제문 : 왠일로 이렇게 보존이 잘됐어, 현장이 ... ?

홍조 : 어유 뭐 ... 요즘 순경애들두 그렇구, 테레비서 CSI 같은거도 다들보고,

감식반두 애들이 샤프하고 ...

제문 : 근데 아핌에 소나기 잔뜩 왔지 ? 웬만한건 다 뭉개졌을꺼아냐 ...

홍조 : 그렇죠 ... (시체보며) 그래도 암튼 둔기죠 둔기. 두개골 골절에다 과다출혈.

 

제문의 시점으로 ... 옥상 아래로 섬칫하게 늘어져 있는 아숙의 긴 머리.

응고된 피가 뒤엉켜 떡져있고, 수직 아래 땅바닥에는 피가 스며든 검붉은 원이 보인다.

아숙의 머리 수직 아래 쪽으로 걸어오는 감식반원.

조그만 삽 같은 것으로, 피에 물든 흙을 조심스레 퍼담기 시작한다.

 

이건 또 뭔가. 다큐도 아니고 현장25시도 아니고 말이지. 카메라는 마더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다닌다. 도무지 영화 같지가 않다. 산만하고 뭔가 다들 이건 영화가 아니야라고 말하고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 전체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영화속에서 진지한 사람은 마더 한 명 밖에 없다. 아들이 누군가를 죽였다는데 관심 갖는 사람하나 없고 사건 담당 형사조차도 사건에 집중하지 않으며 심지어 돈주고 고용한 변호사조차 사건은 관심 밖이다.

 

바보 아들조차도 자신이 사람을 안죽였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고 마더와 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마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줄 수도 없다. 이 상황. 한마디로 좆같다. (#40 혜자의 집. 몰라 암튼 이 동네 자체가 ... 좆같애 ...경찰도 좆같고 ... 사람들도 좆같고 ... 이 전 - 반적인 분위기가 ... ? ) 그래서 마더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이 관객들도 잠시 마더와 함께 다니며 속도 터지고 돈만 밝히는 변호사 때문에 애가 타고 사건을 아무렇게나 덮어버리는 형사에게 화가 나고,

 

# 52 구치소 면회실

(...중략...)

흐느끼는 혜자를 왠지 무심하게 바라보는 경배 ... 면회실에 흐르는 불편한 침묵

혜자, 갑자기 울음을 뚝 - 멈추며 미친듯이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한다.

 

혜자 : ( 꽃무늬 침통을 꺼내며 ) 안되겠다. 너 이리 가까이 와봐

경배 : ?

혜자 : 나쁜일, 끔찍한 일, 속병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

깨끗하게 싸- 악 풀어주는 침자리가 있어. 바지 좀 내려봐

경배 : .........

혜자 : 황제내경 책에도 나오는 거다. 오금쟁이 위로 다섯 치, 거기서 세치 반.

여기 이 구멍에다 허벅지 대봐 ... , 침 맞고 싹 다 잊어버려야돼

 

완전히 넋이 나간, 미친 사람 눈빛의 혜자 ... 정신없이 중얼대며 침통에서 침을 꺼내든다.

당황스레 바라보던 교도관, 혜자의 팔을 붙잡으며

 

교도 : 어머니 잠깐만 ...

혜자 : 종도 삼촌, 한번만 좀 봐 줘. 우리 애 속병 난 거 봤잖아... 딱 한 대만. ?

경배 : ( 나지막히 ) ... ... 침놔서 죽이게 ?

혜자 : ... !!

 

가슴이 철렁 내려앉듯, 다리에 힘이 풀리는 혜자, 침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데...

 

경배 : ... 앞으로 오지마 엄마 ... 와도 안 만날거야.

 

문을 꽝 - 닫으며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경배. 면회실을 감싸는 잔인한 정적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혜자의 눈망울이 가늘게 떨린다.

 

아들에게 실망하고 끝내는 험한 일을 겪는다.

 

 

3. 다시 그 마더

 

다시 첫장면으로 돌아가서 마더는 그 이상한 춤을 추며 넋이 나간다. 이제는 관객도 마더가 왜 그렇게 미쳐보이는지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선 모습을 가진 마더가 겪은 일을 그 감정을 답답하고 지루한 영화 전체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마더가 가지는 모성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모성에 대한 해답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감정적인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끝나버리는 이 답답함. 마더가 느꼈을 그 답답함. 나도 허벅지에 침 한데 맞아야겠다. 나쁜일 끔찍한 일 속병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깨끗하게 싸악 풀어주는 침자리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장면 하나 올리며 책을 덮겠다.

 

# 83 유치장 면회실

 

고개를 들어 눈 앞의 종팔이를 바라보는 혜자, 뒤에는 불안한 기색의 제문이 서있다

이제야 처음 얼굴을 드러내는 종팔이’ ... 더도 덜도 아닌, 전형적인 지진아의 얼굴이다.

생각와 감정을 좀처럼 알 수 없는, 그저 멍 - 한 눈빛의 종팔이.

그 앞에 마주 선 채로 뭔가 말을 꺼내지 못하는 혜자 ... 면회실에 한 동안 침묵이 흐른다.

종팔 : ......

혜자 : ... ... 부모님은 계시니 ?

종팔 : ... ( 도리도리 )

혜자 : 엄마 없어 ?

종팔 : ( 끄덕 끄덕 ) ... 아숙이 사랑해 !!

혜자 : ......

종팔 : 아숙이 너무너무 사랑해 !!

 

멍한 눈빛으로 계속 아숙이 사랑해 를 외치는 종팔이 ...

순간 갑자기 펑 - 울음을 터뜨리는 혜자, 무너지듯 통곡한다.

당황해서 쳐다보는 제문의 시선에는 아랑곳 없이

종팔이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혜자, 걷잡을 수 없이 어깨가 들썩인다.

 ** 이글은 제가 네이버카페 월간시나리오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9년10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