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와 드라마/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왕의 남자', 不悔 후회하지 않는다


一. 시작은 민망하게


평촌 CGV에서 아침에 ‘왕의 남자’를 보는데 민망해서 죽을 뻔 했다. 옆자리에 환갑을 넘긴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 입을 채워주랴, 아랫 입을 채워주랴’ 하고 공길이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쫙 벌리는데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엄마가 옆에 없어도 민망했을까? 

다른 영화에서의 침실에서 혹은 차안에서 벌이는 정사는 그것이 오럴이든 애널이든... 쓰리썸이든 스와핑이건 그것은 관습적인 것이다. 그 장면을 열쇠구멍으로 훔쳐보든 당사자가 되어 즐기든 이것은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상적인 베드신보다 ‘왕의 남자’에서 그 패거리들이 벌이는 놀이마당이 더 낯 뜨거운 것은, 감히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공개적으로 폭로하기 때문이다.

관음의 시선이 아니라 마치 관객자신이 그 놀이마당의 한 구석에 자리를 펴고 앉아 관중이 되어 까발려 질 수 없는 것을 왕과 군중 앞에서 목격을 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친척들 앞에서 연인과 섹스를 하거나, 법정에서 재판관 앞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종의 금기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 폭로되는 금기와 더불어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데서 민망함을 느낀다. 연산은 녹수와는 서로 반말을 일삼고, 신하의 멱살을 잡고, 선왕의 후궁들을 죽이고 심지어 남색까지 즐긴다. 한국인의 무의식 저 아래 ‘군사부일체’가 깊이 박혀 있어서 공개적인 정사보다 그것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다 더니 영화 초반에서 느끼는 민망함은 극이 진행되면서 드디어는 쾌감으로 바뀐다.



二. 하위를 자쳐하는데 왜 고급스럽게 느껴지나


현재의 영화를 고급문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노블레스 계층만 누리는 것이 아닌 7천원과 한두 시간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이자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십 명이 참여하여 몇 십억씩 투자되는 하나의 노동 집약적인 문화 산물을 하위의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영화 자체도 동시대의 가치체계와 시대양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픽션일지라도 하나의 역사적인 가치를 지난다.

‘왕의 남자’는 왕 앞에서 해괴망측한 놀이마당을 벌이며 스스로 하위를 자쳐하는데, 이상스럽게도 관객은 그것이 고급스럽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연산군이 패거리들의 짓거리를 바라보듯이 관객도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개의 다른 공연을 보기 때문이다. 장생과 공길이 한양에서 새 광대패와 만나서부터 벌이는 놀이마당이 다섯판이나 되고, 그중 궁궐에서 벌인 판이 세 판이다. 

바로 왕을 웃기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는 왕을 능멸한 첫 번째 판(씬22), 권력을 잡은 조정대신을 능멸한 두 번째 판(씬34), 연산의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세 번째 판(씬53) 들은 모두 완성도 높은 ‘마당극’자체이다. 궁에서 벌어진 마등극은 점점 완성도가 높고 화려해 지는 동시에 긴장의 폭이 깊어진다.


22. 궁 연회장 - 낮

...(중략)...

소극이 끝났는데 연산은 끝내 웃지 않고 분위기 완전히 가라앉아 있다.

장생, 사색이 된다.

뒤에 선 육갑 칠득 팔복, 넋을 잃고 있다.

그때 공길이 갑자기 장생에게 쪼르르 다가가 즉흥적으로 에드립을 친다.


공길

그 애가 당신 씬 줄 아슈?


장생, 예정에 없던 공길의 행동에 당황한다.


장생

뭐? 너 왜 이래?


공길

(에드립을 계속 이어간다)

흥, 다 아는 소문을 당신만 모르는 구나?!


장생, 뒤늦게 공길의 에드립을 깨닫는다.

...(중략)...


연산

(공길에게)

고개를 들어라.


공길, 고개를 든다.

연산, 땀에 촉촉이 젖은 공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녹수, 공길을 바라보는 연산을 주목한다.


연산

니 이름이 뭐냐?


공길

공길입니다.

...(중략)...


34. 궁 연회장 - 낮


...(중략)...

광대들 한데 어울려 신명나게 춤을 춘다.

공길, 여장을 하고 나타난다.

연산, 공길이 나타나자 몸을 앞으로 숙이며 관심을 보인다.


공길

(봉투를 들이밀며)

제 남편 좀!


장생

이러시면 다치십니다.


공길

(떨어진 봉투를 다시 들이밀며)

제 정성입니다. 받아주세요.


장생

(봉투 안을 확인하고)

어허, 이러시면 다친데두.


공길

(봉투를 호주머니에 들이밀며)

제발 한 번만 받아주세요.


장생

(손을 뿌리친다)

나를 어찌 보고 이러시오.


공길, 봉투를 호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바지춤 속으로 손이 들어간다.


장생

어허.


공길

역시 소문대로 위세가 대단하십니다.


장생

(흥분해서 몸을 비비꼬며)

좀 살살. 아! 어찌 이다지도 귀한 선물을.


공길

내 손이 좀 합니다.


연산, 공길의 연기에 폭소를 터뜨리며 반응한다.

녹수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즐거워하는 연산의 웃음에 희열에 찬 표정이다.

중신들은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뭔가 불안한 표정이다. 

형조판서 윤지상, 눈에 띄게 중신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안색이 안 좋아진다.

연산 갑자기 연회장 중앙으로 뛰어든다.


연산

(왕관을 벗어 장생에게 내밀며)

받아 주십시오.


중신들 경악한다.

광대들도 굳는다.

...(중략)...

인물 설정이 광대인 탓도 있겠지만, 장생과 공길은 영화에서 외줄 위 공연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지막으로도 외줄위에서 공연 아닌 공연을 한다. 그냥 말해도 되는 장면을 공을 들여 손 인형으로 말을 하는 성의를 보인다.


三. 장생과 공길은 왜 수동적으로 보이는가

한양까지 찾아와서 광대극을 벌이고 드디어 왕 앞에서 큰 판을 벌이겠다고 나선 이는 분명 장생이지만, 그는 역사의 쳇바퀴 속의 부속품처럼 사실상은 수동적인 인물이다. 장님이 되면서까지 공길을 감싸 안고 세상을 초탈한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도 왕의 손에 놀아난 셈이다.

흔히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그들의 노력여하에 관계없이 숙명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장생이 공길을 탐하던 양반을 죽이고, 왕을 조롱하는 광대놀이를 버젓이 저잣거리에서 벌이고, 왕 앞에서 눈썹하나 깜짝 안하고, 공길에게 덧씌워진 누명까지 뒤집어 쓴 것은 본인이 전부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사건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신들의 ‘신탁’에 따라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것과 같다. 바로 역사에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 점이 수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연산은 그에 반해서 좀 더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미지를 보이지만, 이야기 핵심에 흐르는 그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통사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국c사시간에 들은 이야기들... 연산군에 관한 모든 편견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역사는 원래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죽어서 ‘군’으로 낮춰진 수치를 당했던 그에 대해서 영화는 어떤 특별한 시선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인간으로서 동정할 뿐이다.


四. 후회하지 않는다(不悔).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이 영화를 보며 필자도 분명히 열광하며 웃고 울었다. 우직한 장생의 성품에 반하고 화려한 색채에 가슴 설레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공길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연산의 불행을 읽고 동정했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은 후 다시 이 고급문화를 표방한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가슴에 구멍이 하나 생긴 이 기분.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이 공허감이 이 영화의 메시지 일까?

필자도 연산처럼 그저 놀아보자는 판에 울고 웃은 것인가.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한 판 놀이에 신명나는 놀이에 혹해버린 것일까.

아래 79씬에서는 공길과 장생은 세상을 ‘반 허공’이라고 말한다.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광대로서의 고단한 삶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연산의 삶과 겹쳐진다.


79. 궁 연산 처소 -밤


낮은 병풍.

그 앞에 연산 앉아 있다.

병풍 뒤에서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 들려온다.

풀피리 소리 멈춰지고,

병풍 위로 손 인형 하나가 올라온다. 장생 인형(a)이다.

장생 인형, 병풍 위에 털썩 걸터앉는다.

공길 인형(b), 병풍 위로 고개를 삐죽 내민다.

공길 인형, 주춤거리며 다가와 장생 인형 옆에 와서 앉는다.

나란히 앉은 두 인형 화면 가득 잡힌다.

 ...(중략)...

춤을 추다 병풍 모서리에서 공길 인형이 외줄을 탄다.


공길(off-sound)

(a)아래를 보지 마.

(b)무서워.

(a)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돼.

줄 위는 반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


이 영화는 인생이 반허공의 실체가 없는 텅빈 공간이며 그 안에 사는 각자의 삶은 ‘눈이 먼’ 소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래 씬82에서 항상 묵묵히 세상풍파를 헤치고 나가던 당당하던 장생은 진짜 장님이 되어 그동안의 삶의 회한을 이야기하며 외줄위에서 마지막 판을 벌인다.


82. 궁 후원 연회장-낮


...(중략)

장생, 경사진 줄을 올라 외줄 위 끝에 선다.


장생

어허~ 내, 눈이 멀어 줄 위에 올라서니,

이 색다른 맛일세!


장생, 줄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금방 떨어질 듯 휘청거린다.

공길, 불안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장생을 본다.


장생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걸어 나가며)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패를 첨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울컥 하는 걸 겨우 참으며)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사이)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주인공 장생이 다시 광대로 태어나겠다고 말한 것은, 지나간 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일장춘몽의 허무한 인생을 원망하지도 않고 미화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라고 읊조릴 따름이다. 관객은 그들이 후회하건 후회하지 않건, 세 명의 광대 -- 장생, 공길, 연산 --의  비극적인 삶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공허한 인생살이 ... 필자도 후회하지 않는다.


82. 궁 후원 연회장-낮


...(중략)

장생, 반동을 멈추고 줄 위에 바로 선다.

공길도 선다.


장생

넌 죽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공길

아니, 싫다!


장생

그럼 왕으로 태어나면 좋으련?


공길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태어날란다.


장생

이 년, 그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공길

그래 이놈아. 그러는 네 놈은 뭐가 되련?


장생

나야, 두말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사람들, 연회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인서트] 

연회장으로 닿는 산자락을 넘어 연회장으로 밀려 내려오는 반정군들. 이를 보는 연산.


공길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장생

(허리춤을 풀며)

지금 한번 맞춰보면 안될까? 


연산, 웃음을 터뜨린다.

연회장의 사람들 모두 도망가고 연산과 녹수만 남는다. 

녹수, 겁먹은 표정으로 반정군들과 웃는 연산을 번갈아 본다.

홍내관 다급하게 달려와 녹수를 끌어낸다.

녹수, 연산에게 미련이 남는 듯 주저하다 도망간다.

도망가다 반정군의 칼에 맞아 죽는다.

 

공길과 장생, 줄을 힘껏 튕기더니 높이 몸을 띄운다.

시간이 멈춘 듯 화면 정지한다.

각본: 최석환 / 감독: 이준익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6년1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