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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포장 알바 후기, 모던타임즈가 생각나네


이번에는 파주에 있는 모 제품 업체의 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계 부채에 대책이 설 때까지 당분간 다녀야 한다.


아침 8시 15분에 대화역 5번 출구로 가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몰려있다. 각 인력업체에서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오래 일한 사람도 있고 매일 새로 온 두어명의 사람들도 있다.


하루 5만원의 일당을 받고 아침9시부터 6시까지 공장에서 궂은 일을 하러 나온 분들이다.


공장에서 일한다는 선입견을 뺀다면 나쁘지 않다. 상상해 왔던 더러운 작업환경도 성격나쁜 작업반장도 힘든 일도 없다. 일하러 나온 사람들도 교양있고 나쁘지 않은 차림새다. 


첫날과 둘째날에는 작은 포장용기에 핫팩을 담아 빠레트에 옮기는 일을 했다. 한상자에 핫팩 50개씩이 들어가는데 빠레뜨에는 한줄에 상자 20개가 쌓이고 그렇게 다섯줄이 쌓이면 한 빠레뜨다. 


(빠레뜨 - 쉽게 짐을옮길 수 있도록 물건을 쌓는 단위이다. 그날 작업한 상자의 한 빠레뜨는 상자 100개였다)


그런데 팩에 공기가 가득차서 상자가 잘 덮이지 않기 때문에 힘을 줘서 꾹꾹 눌러서 담아야 한다.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아픈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멀쩡한 사람도 쉬지 않고 일하면 굉장히 손이 아프다. 다른 작업대와 달리 작은 상자를 포장하는 사람은 빠레뜨까지 이걸 옮겨야 한다. 공장안이 추운데 상자를 나르면 굉장히 덥다. 짧은 거리지만 바삐 오가다 보면 발목시 시큰거리고 짐을 든 손목이 아프다.




이틀이 지나자, 이일이 여자가 하기에는 포장 공장안에서 제일 빡센 일인 것을 눈치챘다. 모두 앉아서 일하거나 단순 노동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작은 포장일은 힘을 줘서 눌러담아야 했고 다른 생산 라인의 제품까지 포장해서 일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상자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왔다갔다하니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삼일 째부터는 부러워하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자리로 옮겼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찰리채플린이 물건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작업대 앞에 서있다. 바로 저 움직이는 작업대가 컨베이어 벨트다.


절대로 어렵거나 힘든일이 아니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면 굉장히 서글프다. 분명히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속도로 기계가 돌아간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5분간 휴식하고 점심시간도 1시간 쉬고 또 오후 4시 30분부터 15분간 휴식이 있다. 또 중간중간에 기계가 서기도 한다. 


그런데 30초도 다른 짓을 아예 할 수가 없다. 30초동안 다른 일을 하면 작업대 위에 있는 물건을 포장하지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1초만 밀려도 엉망징창이 된다.


공장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고 작업환경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엑스트라 알바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끼리는 흥이 나면 더 빠르게 할 수도 있고, 문제가 생기면 더 느리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는 판단력이 없고 감정이 없다.


다시말해서 인간은 100미터를 20초 동안 뛰는 게 어렵지 않다. 빠르게 뛰면 여자도 16초도 뛸 수 있고 육상 선수들은 11초 대에도 돌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20초의 속도, 아니 40초의 속도라도 하루 종일 달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피곤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손이 빠르고 힘이 세도 쉬지 않고 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쉬어도 난리가 나기 때문에 (일이 꼬인다는 뜻) 누구도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화장실에 갈 수 없고 (그렇지 10분이나 쉬다니!) 전화는 고사하고 옆으로 몸조차 돌릴 틈도 없다.


기계가 고장없이 일하면 따라서 일해야 한다.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하는 엉뚱한 짓들을 보면 이것이 더 명확하다. 기계부품처럼 일한다는 뜻이 뭔지 공장에서 일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산업혁명시대에 기계를 때려부순 노동자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일자리가 없어져서 기계를 거부하는 러다이트를 벌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고장 없이 돌면 계속 일해야 하는 그 비인간성에 분노를 느낀게 아닐까?


그래도 빵구난 가계를 메꾸기 위해서 경력단절 아줌마는 또 내일 공장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