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자’는 지방으로 내려간 박철수감독의 작품으로 시나리오는 ‘김전한’씨가 쓴 것이다. 간혹 영화 크레딧의 각본가와 실제로 쓴 사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궁금한 작품은 꼭 술자리에서 묻곤 하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최종고와 영화가 너무 다르기도 하고 글쓴이의 성별이 궁금하기 때문에 물어보러 다녔다. 탐문중에 김전한씨가 젊은 여성분이란 잘못된 정보가 40대 아저씨로 고쳐졌다. 

사십대 아저씨... 그 생각을 하고 곰곰이 영화를 떠올려 본다. 어떻게 감독이고 작가고 이렇게 나이 많은 중년의 아저씨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어라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잖아?... 근데 이 영화 찍는 거 힘들지 않았을까?


1. 사회적인 이슈에서 사적인 일로


이 극은 ‘나이 많은 여자(有夫女)가 나이 어린 남자(未成年)와 성 관계를 가졌다고 법정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에서 시작한다. 그것도 친절하게 자막으로 적어주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극 내내 화두가 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지 않고 개인의 일로 돌아간다.

오늘 읽을 심의대본은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의 최종고 중 이 한 장면은 읽고 시작해야겠다.


씬6 교도소 앞

철문이  ‘끼이익’ 
쨍한 햇살 아래로 나오는 炆姫.

일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카메라 샷터소리와 몰려드는 기자들.
질문이 무작위로 터져나오는데

소리1: 이문희씨, 유죄를 인정하십니까?
소리2: 남편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소리3: 출소한 소감부터 한 마디 해 주시죠?
소리4: 와글와글...
소리5: 지글지글...

그녀, 기자들의 취재경쟁 몸싸움에 이리저리 떼 밀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햇살이 쨍하게 내리쬔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들은 왁자한 소음.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고
기자들을 뚫고 나오는 그녀.
대답 없는 그녀의 꽁무니를 따르면서
무어라 무어라 질문들을 퍼 부으며 뒤따르는 기자들.

이때 교도소 입구 쪽으로
달려 들어오는 에쿠스.

에쿠스에서 내리는 현.
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문희 쪽으로 달려간다.
현, 기자들을 밀치고 문희의 손목을 잡는다.
손목이 잡힌 문희, 보면 현이 다가와 있다.
기자들의 밀고 당기는 그 아수라장 안으로 들어온 현.

현, 문희의 몸을 와락 안는다.
현, 문희에게 깊고 깊은 키스를 한다.
너무나 기습적인 현의 행동에
둘러싼 카메라 기자들 멍해진다.
카메라기자들 이 특종의 장면 앞에서
오히려 카메라를 내리고 바라본다.

사이런트!

현, 문희의 손목을 끌고
둘러선 기자들을 밀치고 에쿠스쪽으로 간다.

차에 오르는 두 사람.
그제서야 제 정신을 차린 기자들,
다시 카메라를 눌러댄다.
불안하게 좌우로 왔다갔다 하다가
튕겨나가 듯 빠져나가는 에쿠스.


나머지는 좀 성의 없는 짓이지만 - 시나리오가 영화와 너무 달라서 - 심의대본으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S#5    교도소

   기자들 - 김문희씨/ 김문희씨 심경 좀 말해주세요. / 후회하지 않습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문희 - 죄, 죄송하지만 고무줄 좀. 잠깐만요. 좀 비켜주세요~

   기자들 - 어? 그 학생 아냐? 어~ 맞다!
   INT CUT - 레코드 가게 회상
   (현을 바라보는 문희)
   INT CUT - 레코드 가게 회상
   (일어서는 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기자 - 서로 만나기로 한 겁니까?
   (현을 바라보는 문희)
   INT CUT - 레코드 가게 회상
   (웃는 현의 얼굴)
   INT CUT - 레코드 가게 회상
   (웃는 문희의 얼굴)
   현 - 미안해요
   문희 - 넌 괜찮지?
   현 - 네 ~ 왜요? 나 이상해요?
   문희 - 아냐.
   (둘 키스하며 서서히 걸어나간다.)
   (자신들을 찍는 카메라를 낚아채는 현)
   (공중으로 던져지는 카메라)


그럼 이들의 개인적인 사생활로 들어가 보자. 이 여자의 걱정은 출소 후에 사진이 찍히고 사회적으로 망신을 사는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도 자신의 모습이 초췌하지는 않은지 사소한 걱정부터 하기 시작된다. 그 여자 문희는 조사받는 과정내내 무시를 당하면서도 머리를 묶을 고무줄을 달라고 말한다. 출소 후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이 말을 한다. 물론 누구도 고무줄을 달라는 그녀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신경이 쓰인다. 이 사건(고무줄을 달라고하는 것)은 이 여자를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녀를 곤란하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게 좀 우습게도 멜로영화처럼 여자에게 다가와 옷으로 감싸주며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서있는 여자를 구해준다.

충분히 미성년자와 즐길 수 있다. 둘이 사랑할 수도 있고, 모텔을 전전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현이 곤경에 처한 여자에게 나타난 것은 그것과 다른 문제다.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이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남자가 되버린다. 이렇게 등장한 남자는 수컷을 넘어서 하나의 인격을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사회적인 성을 구분 짓기 전에 현과 문희 둘은 나이차이가 있고, 그것은 로맨스를 꿈꾸기에 부족함은 없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있다. 그나마 이들은 같은 중산층의 사람으로 시간의 간극은 있겠지만 문화적인 충돌은 보이고 있지 않다.

S#6   거리

현(OFF) - 괜찮아요?
문희(OFF) - 괜찮아.
현(OFF) - 정말 괜찮죠?
문희 - 으음 ~ 괜찮아.
현 - 괜찮다니 깐 괜찮네요. 정말 괜찮죠?
문희 - 괜찮... 넌 괜찮냐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니? 그 말밖에 모르니?
    ...... 못난 자식.
현 - 네? 누가요?
INT CUT - 레코드 회상
    (CD주고 받는 손)
INT CUT - 레코드 회상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어린 남자랑 한 번 잤다고 하루아침에 사생활은 낱낱이 공개되고, 가정은 파괴되었고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 되었는데 말이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얼굴도 인권이라는 이유로 보호하는 한국사회는 이 여자에게는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다. 돈으로 성을 매수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용인해도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십대들의 섹스는 용인해도 바로 이 둘의 관계는 뿌리 깊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용서받지 못한다.

물론 이들의 행동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면 괜찮고 아니면 안되는 것일까? 돈을 주고 성을 샀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 그럼 돈을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인가? 사실 대부분의 원조교재의 당사자가 중년남성과 오갈데 없는 어린 소녀인 것을 생각하면 돈까지 주지 않으면 정말로 나쁜 것 아닌가?

신용카드며, 차며 부모의 것을 빌려서 쓸 수밖에 없는 어린 남자는 그래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는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면죄부를 받고 그걸 떳떳하게 사용하며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모두들 ‘너는 잘못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도 별로 그런 일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처음에 녹색의자를 접했을 때는 정말 실망이었다. 실망스러움은 아마추어적인 영화의 어설픔에 있었다. 더구나 박철수 감독이 이영화를 만들었다니... 다시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비어있는 여백이 있는 동양화 같이 텅빈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이 심의 대본을 보면서 생각했다. 대사와 지문과 둘 중에 한 가지만 써야할 때, 작가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시나리오 작법상, 트리트먼트를 쓰고 최종적으로 대사를 넣은 시나리오가 탄생하기에 실상 대사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라면 작가는 대사를 택해야 할 것 같다. 가장 필요한 동선은 지정해 주어야 하지만 대부분은 배우자신이 이미 알고 있을 만큼 행동은 상상이 쉽지만 상대적으로 대사는 시간이 걸린다.


2. 그 여자를 보면 서글퍼지는 이유

다른 사람이 뭐라고 떠들든 어떻게 생각하든, 둘은 서로에게 떳떳했는지 다시 만나자 마자 허기를 채우고는 바로 모텔로 향한다.



S#12   모텔 안

문희 - 아~ 아~(호흡)
문희 - 이제 천천히 들어와.

...(중략)...

문희 - 가만있어. 움직이지마. 어~허~
현(OFF) - 네 ...... 왜 ... 왜 그래요?
문희(OFF) - 어디 몰카가 있을 거 같애.
현(OFF) -네?
  (형광등을 살피는 현)
  (옷장을 살피는 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문희)
  (에어컨을 살피는 현)
문희 - 현~현~ (요기요기 입 모양)
  (드라이기를 살피는 현)
현 - 없는데요.
문희 - 그래?
현 -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 여보세요? 예.. 혹시 몰카가 설치 돼있나
      해서요. 예.. 몰래 카메라요. 예.. 정말 없는 거죠? 아 아뇨 ~ 청소는 안
      해주셔도 되요. (문희 자지러지게 웃는다) 만져봐요. 아직도 그대
     로 예요. 우리 계속해요. 예? 아.. 어서요. 책임져요.
문희 - (이어지는 웃음) 하하하 ~하아~ 잠깐만.

...(중략)...

(침대 옆 정사)
문희 - 아~ 아~
현 - 왜요?
문희 - (호흡) 하아 ~ 넌 좋았니?
현 - 네.
문희 - 아.. 아우.. 아퍼~ 아퍼~. 너 잘해본다는 게 고작 이거니? 너 지금
        나 강간하니? 넌 내 이곳이 무슨 깡통인줄 아니? 힘으로 몰아
        부친다고 잘하는 거니? 아~너 이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머리가
        나쁘구나!
현 - 나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난 누구처럼 경험이 많지   
      않은 거 알잖아요.
문희(OFF) - 미안해. 그래 ~ 그래 맞아 ~

...(중략)...


현은 어린남자라 세상을 물정을 모른다기보다는 좀 어벙하거나 순진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문희는 그 어린남자의 그런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는 성적인 주문도 귀찮아하지 않고 뭐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는 젊은 사람만의 여유 말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연인에게 뭔가 공을 들인다는 게 쉽지 않다. 귀찮아지고 다 쓸데없는 일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연하를 사귀는 여자들은 자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애인이 좋아진다.

S#27   도로 차 안

...(중략)...

   문희 - 생각? 무슨 생각?
    현 - 우리 만남이 정말 잘못이라면 왜 혼자 감당해야 되죠? 남자...여자
    (전화 벨소리) 그냥 사람으로 같이 있고 싶어요. 다만...성인 되기 전에 누
          구 앞에 나타났고,, (크크) 혼자서 별생각 다 했어요. 문제의 미성년
          으로부터 옷 갈아 입을 날도 이제 열흘 남았어요 ~
    문희 - 현아~ 한꺼번에 속에 있는 말 다하지마. 우리 오래 같이 있으려면
           서로 말을 아끼자! (벨소리) 누군데? 끊지 말고 받아~
    현 - 아녜요~ 쓸데없는 거예요. (벨소리)
    문희 - 받아
    현 - 여보세요? 누구? 나 정말 너 잘 몰라. 제발~ 뭐? 나를? 아 제발
         부탁인데 말야
...(중략)...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란것이 서로 상호간에 뭔가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인데 영화에서 속에서 현의 태도는 답답하다. 그는 웬만해서는 화도 내지 않고 여자가 하는 말에 대해서만 말한다. 대화가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시험지도 아닌데 말이다.

마치 로봇처럼 단순하기만 한 것이 그의 매력인가. 그녀가 하자는 대로 다 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말하지 않고 원하는 것까지 들어준다.



S#19   공방 작업실

...(중략)...

   진 - 어떤 느낌이야?
    문희 - 우선 예뻐~ 내 몸에 와 닿는 순간순간 느낌 늘 새로워 ~ 진아!
   (작업하는 진)
    문희(OFF) - 정말 괜찮지?
    진(OFF) - 너희 둘만 좋다면 함께 살아.(차소리E)

...(중략)...

우선 예쁘다. 가장 공감했던 대사이다. 세수만 해도 얼굴이 하얗게 되었던 중,고등학생 시절 왜 어른들이 예쁘다고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벌써 다른 이의 젊음이 부럽고 그 뽀얀 살결과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나이들었다고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정말로 할머니로 느껴졌다. 분명히 둘의 정사는 이쁘고,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배우 서정은 10대보다 더 고운 피부로 미소년 못지않게 젊음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 사연 많은 눈빛이 ...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감독은 30대 여성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서글퍼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3. 현실과 영화사이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나는 첫 도입부터 사실과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문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곤혹을 치루고 있을 때 현이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가장 영화적인 장면 둘을 뽑자면 처음 발단부분에서 현이 나타나는 장면과 마지막부분에 가족들을 불러와서 와인파티를 하는 장면이다.

S#52   상상의 파티 (작업실)

    진 -오셔서 감사합니다.
    현母 - 고마워요. 후후..
    (현 부모 소개)
    진 - 와인하세요.
    (문희 남편 소개)
    (음식이 담긴 접시 INS)
    진(OFF) - 어머니 ~
    진 - 술 안 하시죠? (귀속말) 쟤네들 ~
    (문희 엄마 소개)
    형사 - 호오 ~ 와인 좋죠.
    진(OFF) - 와인 좀 더 할래?
    문희 - 응
    진 - 재밌지?
    간호사(OFF) - 할머니 조심 하세요.
    할머니B - 잉~아이고 아이구 맛있는 냄새 남다. 으응 우리도 빨리 먹자.
    흠모녀 - 어머 벌써 시작했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늦어서 죄송
             합니다. 오셨어요?
    흠모녀(OFF)- 늦어서 죄송해요.
    현母(OFF)- 왔어?
    흠모녀(OFF)- 네~
    문희 - 쟤구나? 만나달라고 전화하던 애가..
    흠모녀(OFF)- 어? 현 저깄네?
    흠모녀 - 현아 축하해! 니 생각만 하면 난 슬퍼 가슴아파. 그러나 오늘이
             지나고 니가 성인이 되면 난 달라질 거라 믿고 참고 기다려 왔
             어.
...(중략)...
   문희남편(OFF)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겠어요. (IN)어떤 생각도 말도 하
                     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궁금한게 있는데 그건 이따가 본
                     인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죠.
    현 - 아직도 뭔가 못 마땅한 모양이죠?
    문희 - 그럴까?
    현 - 솔직히 말해줘요. 어땠어요. 결혼생활?
    문희 - 다들 그렇게 살아~ 내 바람기가 문제였겠지!
    현 - 다행이다. 그 바람기 아니었으면 우린 못 만났을 거 아녜요.

...(중략)...

연극화된 상상은 사람들을 조금씩 희화화시키면서 그 불유쾌한 상황을 유쾌한 것으로 바꾸고 있다.

영화는 문희와 현의 문제를 심각하게 몰고 가지 않았고 처음부터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쟁점화 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두 남녀 사이에 섹스만 남은 것도 아니다. 아마도 애초에 이것을 영화로 만들 때는 적어도 한 가지는 가정하고 시작했을 터이다. 이 사건의 시비를 떠나서 두 사람 사이에는 소통 가능한 연결의 끈이 어떤 식으로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끈이 꼭 섹스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씬을 보면 문희는 적어도 현을 섹스 파트너로서만 대하고 있지는 않다.

S#17   공방 안

...(중략)...
   문희 - 어 잘갔니? 그래~ 그럼. 나도 잘 왔지. 잘했어. 잘했어...정말 잘했
           어. 야! 나쁜 자식아! 너 말해봐. 보고 싶었어요, 헤어지기 싫어요,
           이거 다 말짱 거짓이었지? 지가 정말 나랑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날 달랑 안아서라도 억지로 차에 실었어야 할거 아냐.
           너 날라리지? 너 나 그냥 호기심에 만난 거지?
   문희 - 대답해봐! 니가 정말 나랑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날 달
           랑 안아서 억지로라도 차에 실었어야 할거 아냐. 허어~ 니가 정말...
           나랑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날 달랑 안아서 억지로라
           도 차에 실었어야 할거 아니냐구...허..
   현 - 자꾸 날라리 날라리 하는데
  현 - 별루 좋은 뜻으로 안 들려요. 그 말 사과해요.

개나리도 벚꽃도 다 떨어져가는 이 즈음에 녹색의자를 읽고 있자니 더 씁쓸해진다. 사실 지난주에 이 대본 2개를 들고 강화도에 작품여행을 일주일간 다녀왔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서 무모한 여자셋이 공동창작이란 걸했다. 같이 한 작품이 시나리오는 아니였다. 계약을 한 것도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작업을 했다. 바다에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었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대본은 들춰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집으로 왔다.

강화도에는 이제 벚꽃이 피기 시작할테지... 여긴 벌써 다 져버렸는데...
나는 아직도 젊은데 어째 ‘녹색의자’를 보는 나는 벌써 할머니가 되어있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6년 6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